중.단편 모음 추천) 쇼코의 미소 - 최은영

이 책은....

저자 최은영
출판 문학동네
출간 2019.06.20

단편 수록집 안내

쇼코의 미소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
(7개의 중편,단편소설을 엮어 책을 내었다.)


마음에 남는 글들 모음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 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면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 먹혀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 말이 무서웠다.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한지와 영주 -



딸이 태어난 후로는 그늘진 마음에도 빛이 들었다.
마음 속 가장 차가운 구석에도 딸애가 발을 디디면 따뜻하게 풀어졌다.
여자가 애써 세워둔 축대며 울타리들,
딸애의 손이 닿기만 했는데도 허물어지고
그 애의 웃음소리가 비가 되어 말라붙은 시내에 물이 흘렀다.
있는 마음 없는 마음을 다 주면서도 마음이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까봐 불안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그저 그 마음 안에서, 따뜻했다.
아이는 저만의 숨으로, 빛으로 여자를 지켰다.
이 세상의 어둠이 그녀에게 속삭이지 못하도록 그녀를 지켜주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들 부모의 삶을 지키는 천사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누구도 그 천사들을 부모의 품으로부터 가로채갈 수는 없다. 누구도

-미카엘라-



줄거리 (스포 포함)

나의 눈물버튼인 `비밀`의 줄거리만 간략히 써보고자 한다.

주인공 말자는 암환자이고 그녀에게는 지민이라는 손녀가 있다. 그녀는 손녀를 애지중지 사랑으로 키웠고, 그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예쁘고 곱게 잘 자라주었다. 글을 읽지 못하는 말자에게 지민는 한글을 알려준 선생님이었고, 지민은 꿈이었던 선생님었던 그녀는 학교에 간 후 돌아오지 않는다.
딸과 사위는 지민이 교생 실습을 위해 중국을 갔고, 중국은 땅이 넓어 산골짜기 시골에서는 전화도 편지도 할 수 없는 곳이 있고 지민이 그 곳에 있다고 말한다.
학교도 많이 바빠 방학도 없다고 한다.

지민의 방은 지민이 떠날 때와 그대로 변함이 없다
제주에서 찍은 활짝 웃는 사진까지도.. 옷장 속 옷도.. 모두 그대로이다.
모든게 변함이 없는데 지민만 없다.
가끔 딸과 사위는 이기지 못할 술을 마시고 이해하지 못할 말들과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딸과 사위는 지민이 중국으로 교생실습을 간 후로 눈에 띄게 말라간다.
반 년정도가 지난 어느 날, 딸을 어렵게 지민과 연락이 닿았다고 말자에게 소식을 전한다.

말자는 그리움에 지민의 책상에서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집배원이 들어갈 수 없다는 그곳으로, 어떤 편지도 배달되지 않는다는 그곳으로, 말자는 지민에게 직접 전할 그 편지를 접어 품었다


제목이 비밀인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말하지 못한 지민의 죽음일것이다.
책 뒤 해설에서야 알 수 있는 지민의 이유는 `세월호 사건` 이었다.
기간제 교사였고 갑자기 없어진 이유를 알게 된 순간...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마음이 너무 울컥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지나버린 모두의 슬픔..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지나버리지 못하고 현재까지 마음을 찢어지게 하는 아픔....


책을 읽고 나서...

단편모음이었다. 어느 한 편 아쉬울 것 없이 문장력이 너무 좋았다. 글을 참 담담하게 담백하게 서 내려가는데 그 담백함이 마음을 오래 아프게 한다.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인간 내면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글로 표현해나가는지 .. 대단했고 인물들의 마음 속 깊은 우물과 같은 절망, 인간관계에 대한 실망과 아쉬움, 후회, 애틋함, 존재 자체에 대한 허무등의 마음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오랜만에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랑과 상실인 것 같다.
그래서 살면서 누군가와의 아픈 이별, 상실을 경험해본 사람은 이 책의 울림이 다른 사람과 달랐을것 같다.
삶 속의 관계들이 그렇다. 내 마음을 모두 내어줄 수 있을만큼 소중했고 상대방도 그러했을 거라 생각되었던 사람도, 평생을 함께 갈 것만 같았던 사람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삶 속에 사라지는 연기처럼 없어져버리기도 하고 때론 이유를 알지만 잡을 수 없어 보내줘야 할 때도 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누구나 한번 쯤은 겪는 경험일 것이다.
경험치가 쌓이면 아픔도 덜해야 하는데 경험을 많이 했어도 이런 이별은 늘 마음을 소금밭으로 만든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내면에 말하지 못한 감정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오래두고 다시 한번 읽고 싶은 그런 책이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