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모음) 내게 무해한 사람 (그 여름) -최은영

그 여름 기본정보

저자 최은영
출판 아시아
출간 2017.04.17

내게 무해한 사람 기본정보

저자 최은영
출판 문학동네
출간 2019.06.20


쇼코의 미소를 읽고 최은영 작가님의 글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에 밀리의 서재에서 그 여름이라는 작품을 읽어 보게 되었다. 나중에 작가님의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책에 그 여름이라는 단편이 수록되어 나온 것을 알았다.
그 여름이란 책을 오프라인에서 구입은 힘들 것 같고 인터넷에서는 구입 가능한데...
굳이 그럴 필요 없이 내게 무해한 사람을 구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좋았던 글 발췌

손가락 하나 잡지 않고도, 조금도 시치지 않고도 수이 옆에 다가서면 몸이 반응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수이의 손을 잡았을 때,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창고 구석에서 수이를 처음 안으면서 이경은 자신이 뼈와 살과 피부를 가진 존재라는 것에 감사했고,
언젠가 죽을 때가 되면 기억에 남는 건 이런 일들밖에 없으리라 확신했다.

수이를 만나기 전의 삶이라는 것이 가난하게만 느껴졌다

 

 

고향의 모든 공간이 수이와의 기억으로 뒤덮여 있었다. 수이와 이곳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 일 년 반 정도였지만, 그 시간의 밀도는 수이를 만나기 전의 십칠 년을 압도했다.
같은 베개를 베고 서로의 눈을 마주 볼 때면, 그들은 따뜻하고 몽롱하게 서로의 눈 속에 잠겨 있었고
그럴 때 말은 무용했다

그 거짓말은 수이를 위한 것도,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심이었고 위선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이경은 몰랐다.
수이는 그런 식의 싸구려 거짓을 받아서는 안될 사람이라는 사실도.

열여덟에 널 만났어. 열여덟 7월에. 행복했었어.
그때만 말하는 게 아니라 너랑 같이 지냈던 시간 전부 말이야.
나 너랑 만나면서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운동 계속 못해도, 대학 못 가도 아무렇지 않았어.
이경이 네가 날 좋아하는데, 내가 널 사랑하는데, 보고 싶을 때 언제고 널 볼 수 있는데 내가 뭘더 바라.
참 힘들게 사는구나, 누가 그렇게 말하면 속으로 비웃었지.
나 사실 힘들지 않은데, 바보들, 그러면서.
수이는 이경에게 단순한 연인 이상이었다.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전에 나를 온전히 사랑해준 사람,
내가 나의 소중함을 알기도 전에 온 마음으로 사랑했던 사람이다.

수이와의 연애는 삶의 일부가 아니었다.
수이는 나의 애인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함께 있을 때 가장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이와 헤어진다면 그 상황을 가장 완전하게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수이일 것이다.
그 가정은 모순적이지만 가장 진실에 가까웠다.


나의 생각

처음 아무 정보 없이 글을 읽었기 때문에 수이와 이경의 남녀를 추측하기가 어려웠다. 글을 더 읽어가다 동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성 간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읽었다면 살짝 거부감이 먼저 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작가의 창작 노트이다.

`남의 정원을 망칠 시간에 자기 정원을 가꾸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정원이 있고, 정원에 뿌릴 씨앗이 있다.
어떤 생명도 솟아나지 않는 황폐한 자기 정원은 보지 않고, 남의 집 정원에서 자라나는 꽃과 나무를 미워하고
그것들을 뽑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단죄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것을 자신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예전 플랫 메이트였던 네덜란드인 친구가 내게 물었던 적이 있다.
왜 한국은 동성 결혼이 허락되지 않느냐고.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였기에 마음이 아팠던 적이 있었다.
`한국적 정서에는 동성애, 동성결혼이 맞지 않다`라는 말을 오래 들어왔다. `한국적 정서`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서`가 인권을 탄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섬뜩했다. 그토록 강력한 `정서`라는 것이 소수자 혐오라면 이제 그 `한국적 정서`가 무엇인지 뜯어보아야 할 것 같다. 다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구조를 허용하는 `정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안겼는지 나는 글을 쓰는 내 몸의 고통을 통해 느낀다.

이 글이 이 책의 전부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내가 얼마나 편협적이었고 폭력적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수이와 이경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냥 사랑이다. 레즈비언의 사랑이 아닌 그냥 사랑 이야기.. 사랑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선물이자 축복이다. 세상이 재단해놓은 기준들로 어떤 사랑은 더럽고 어떤 금지되어야 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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