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5월... 잊지 않겠습니다. [소년이 온다] - 한강
- 책 리뷰. 좋은 글
- 2021. 11. 13.
기본 정보 안내
저자 한강
출판 창비
출간 2014.05.19.
이 책은요....
고통스럽게 되살려낸 5월 광주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작가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2013년 11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서 연재했던 작품으로 지금까지의 작품세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통해 저자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으로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게 된 중학생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고통 받는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며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던 그는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날, 돌아오라는 엄마와 돌아가라는 형, 누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동호는 도청에 남는다.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은 5·18 이후 경찰에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살아 있다는 것을 치욕스러운 고통으로 여기거나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다. 저자는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 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2017년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말라파르테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제공 kyobo
저자 한강은 누구?
한국 문학사상 `가장 큰` 이름을 가진 작가.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내놓았을 때부터, `치밀하고 빈틈없는 세부, 비약이나 단절이 없는 긴밀한 서사구성, 풍부한 상징과 삽화들 같은 미덕으로 한 젊은 마이스터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는 파격적인 찬사를 받았다.
고등학교 때 임철우의 글을 읽으면서 소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지웠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학교에 갔다 오는 도중에 차에서 많은 시를 읽었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했다.
한강의 소설은 신세대 소설가답지 않게, 세상을 다 살아버린 자의 좌절과 비애의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그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결손 가정이나 비참한 죽음을 과거사로 안고 있거나, 발작이나 허무한 복수의 장면을 연출하거나,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비탄한 삶을 통해 실존의 문제에 천착하며 서정적 방식으로 이를 풀어 나간다.
그늘진 정서의 소설을 즐겨 쓰는 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그늘진 풍경을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한다. 자신의 소설을 읽고 너무 슬펐다는 독자를 만났을 때가 가장 기쁘다고도 했다.
작업 중에는 새벽 3,4시에 일어나 오전까지 글을 쓰고, 작업이 잘 되지 않으면 줄곧 살아온 수유리 일대를 산책한다. 마지막 탈고를 끝낼 때까지 줄곧 긴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작품이 완성되면 그만큼 해방감도 크다. 『검은 사슴』을 내고 나서는 너무 좋아서 방안을 왔다갔다 하다가 스테플러에 찔려서 제법 피가 나기도 했다. ...
제공 aladdin
책 속 명구절 모음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게 아니라는 듯이 .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로고. 그래도 안되니깐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깨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낫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날 도청에 남은 어린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겁니다.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총을 메고 창 아래 웅크려앉아 배가 고프다고 말하던 아이들, 소회의실에서 남은 카스텔라와 환타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냐느고 묻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것 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 그것이 역사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네가 여섯살, 입곱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면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버렸다이.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사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책을 읽고 난 후 ...
이 책은 꽤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다.
회사 서랍에 이 책이 있었다. 누군가가 읽고 서랍에 넣어 두었는데 안개꽃으로 보이는 표지도 예쁘고 제목도 맘에 들어 한가한 새벽을 틈 타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근무지에서 대성통곡한 기억이 있다.
불과 40년전의 일이다. 아직 생존자도 희생자의 가족들도 가해자도 살아있다. 아픈 기억을 어디에 묻지 못하고 자신을 묻어버린 가슴 아픈 사람들과 그 많은 이유없는 죽음들의 가해자가 아직도 살아있다.
그 가해자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적잖게 많다. 심지어 조롱과 비하를 일삼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회를, 이런 사람들을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 또한 같은 인간으로 부르는 것이 정말 타당한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 1980년 5월 18일 그날을 지켜보는게 아니라 그날의 현장에 직접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도, 읽고 난 후에도 마음이 오래 저릿했다.
1980년 5월 그렇게 소년은 그해 여름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그 소년을 우리 모두 잊지 않았으면 한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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